▲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히라야마 료 지음, 류순미·송경원 옮김 | 어른의시간

“어머니 간병하기 고되지요. 힘들고 짜증도 나고요. 어머니를 모질게 대하는 날도 있겠지요. 그래도 머리만큼은 때리면 안돼요. 어머니니까, 알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돌보면서 너무 힘들어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손을 대기까지 했던 스즈키는 이웃집 여성에게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사람이 알아챌 정도로 자신이 어머니에게 부정적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이웃집 여성의 말이 아니었다면, 스즈키는 아들이 어머니를 상습 학대하는 참담한 지경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었다. 이처럼 간병 생활에 지친 아들에게 이웃의 관심과 보살핌은 큰 힘이 된다. 누군가 자신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간병 남성들은 힘을 얻는다.

< 아들이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에는 부모를 간병하는 아들 28명의 체험담이 들어있다. 저자가 이들을 일일이 인터뷰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게 될 ‘부모 간병’ 문제를 본격적으로 짚었다. 그중에서도 아들의 부모 간병에 초점을 맞췄다. 간병 주체가 며느리에서 아들쪽으로 점점 옮아가는 현실을 반영했다. 준비 안된 간병에 노출된 아들들이 겪고 있는 혼란과 고뇌는 생각보다 크다.

이 책을 덮을 때쯤이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이 무겁게 가슴을 파고든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노화, 질환, 죽음 앞에서 우리보다 먼저 저출산, 저성장, 고령화의 파고와 맞닥뜨린 일본의 사례는 민족 대명절인 설을 앞둔 우리에게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 아픈 부모 바라보는 아들의 착잡한 시선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렵다고 한다. 돈 벌랴, 애 키우랴, 사는 게 바빠 부모 건강은 돌아볼 틈도 없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식들 눈치 봐야 하는 시대가 됐다고 불만을 털어놓는다. 평행선을 달리는 두 세대지만 결국 ‘간병’을 매개로 마주 선다. 서로가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피해갈 수도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들·딸인 까닭이다.

아들의 부모 간병은 여전히 불안하다. 2011년 일본 후생노동성의 조사결과를 보면 학대 가해자의 40%가 아들이다. 어쩌다 부모를 때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일까. 부모 간병을 맡은 대부분 남성들이 열악한 처지에서 허덕이고 있음을 우선 지적할 필요가 있다. 독신으로 부모와 함께 살면서 생활 전반에 걸쳐 부모의 손을 빌리다 덜컥 부모가 아프면 부모를 간병해야 한다. 집안일과 담쌓고 살아온 중년 남성들에게 간병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결혼한 남자는 아내에게 구조를 요청한다. 남편이 “내 아버지(어머니)는 내가 돌보겠다”고 외치더라도 남자가 부모 간병에 전념할 수 있기 위한 ‘뒷일’은 오롯이 아내의 몫이다. 옷을 입히고 목욕을 시키고 화장실에 데려다주는 일은 아들이 하지만, 온 가족의 빨래와 청소, 식사 준비 등을 하는 건 아내다. 겉으로 남자가 부모 간병을 전담하는 듯 보여도 뒤에는 여자의 헌신이 숨어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의 마음은 불편하다. ‘가족을 보살피는 건 당연히 여자의 역할’이라는 사회 통념이 여전한 데다 겉모습만 보고 “시아버지(시어머니)를 돌보지 않는 며느리가 있다니”라며 노려보는 세상의 눈이 많아서다.

저자는 “남편이 정말 ‘주(主) 간병인’으로 자리 잡으려면 ‘보조간병인’인 아내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부모 간병은 아들이, 집안일은 며느리가 전담하는 식으로 나누기보다 부부가 두 가지 노동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 남자라는 이유로 더 힘들게 하는 것들

아들이 둘 이상일 때 보통 부모 간병을 맡는 건 장남이다. 인터뷰에 응한 장남 대부분은 자기가 장남이기 때문에 병든 부모 수발에 나선 건 아니라고 밝혔다. 부모가 간병을 필요로 할 때 정년퇴임을 했거나 집이 가까워 간병을 맡았을 뿐 먼저 태어났다는 책임감 때문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남동생이 간병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허락할 수 없는 동성의 라이벌 의식이 작동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차남은 부모로부터 직접적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경우가 아니면 주요 간병인으로 나서지 않았다.

남자는 힘들 때 도움받는 건 환영하지만 간섭당하는 것에는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돕는 주체가 자신을 제어하는 수준으로까지 접근해올 경우 상대와 거리를 두는 남성 특유의 심리가 발동하는 것이다. 부모 간병에 좀 더 신경 쓰라는 잔소리에 마지못해 움직이는 남동생보다 자발적으로 찾아와 간병 방식에 토를 다는 여동생(누나)과 말다툼이 더 잦은 건 이 때문이다.

아버지보다 어머니를 간병할 때 아들이 더 힘들어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저자는 이를 수평관계와 대면관계로 설명했다. 수평관계는 친한 친구라도 좀처럼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 남성끼리의 친구관계, 대면관계는 속마음을 터놓고 모든 걸 얘기하는 여성끼리의 친구관계를 일컫는다. 아버지를 간병하는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수평관계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버지와 간병을 하면서 처음으로 정서적 교감을 나눴다는 아들도 있다. 별 기대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반면 어머니를 간병하는 아들은 어머니가 투병 중에도 여전히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모성애를 가진 존재로 남아주기를 바란다. 늘 다정다감하던 어머니가 아들의 간병을 트집잡거나 짜증을 내면 아들이 쉽게 불만을 터뜨리는 이유다.

■ 아들 간병에 대한 활발한 논의 시작돼야

남자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의 선후배, 동료들에게 부모 간병 사실을 속 시원히 털어놓지 않는다.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간병의 부담에 노출된 남자들은 거의 없다. 간병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회사 시스템 구축은 더 멀어질 수밖에 없다.

간병은 불시에 찾아온다. 부모가 늘 건강할 것으로 착각한다. 예상하더라도 간병을 준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 주요 간병인이 되는 아들의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미리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가족끼리, 친구나 동료들간에 활발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책의 메시지다.